답장 | Magic Hour

오늘 내가 연출자로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은 촬영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해는 질거라는 거다. 해가 지평선을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기 전까지의 30여분 정도의 짧은 시간을 매직아워(magic hour)라고 하는데, 여자가 육교 주변을 배회하는 장면들을 이 때 담아낸다.

한국에서 날씨가 가장 좋은 10월, 거기서도 3주 동안 날씨예보를 보며 가장 공기가 깨끗한 오늘을 골랐다. 그런 하루의 24시간 중 단 30분이 나의 재료가 될 것이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촬영할 장소를 산책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촬영팀이 장비를 세팅하고 있다. 스무살 무렵 처음 조수로서 광고 촬영 현장에 나갔을 때, 카메라 크기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런 쇳덩이를 들쳐매고 뛰어다니는 대선배들의 뒷모습을 보고 압도 당했었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20대 초반부터 만났던 이 친구들이 하고 있다. 이렇게나 능숙하게. 길게는 10년 지기의 동료들과 오늘 30분간 매직아워란 시합을 치른다.

촬영개시를 기다리는 동안 모든 숏들을 미리 잡아보며 실제로 촬영할 때 생길 사소한 상황들을 세세히 점검한다.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가 차근차근 공들여 몸을 푸는 것처럼. 촬영이 시작되면 고민할 시간은 없다. 머뭇거릴 때에도 해는 추락하고 있을테니까. 시계를 보니 드디어 일몰까지 30분 남았다. 자, 하나, 둘..

‘플레이볼!’
우리들의 열기가 그날 오후의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공수전환이다. 다음 포지션으로! 육교 계단을 내달리고, 좋은 위치를 위해 언덕을 뛰어올라간다. ‘패스! 패스!’ 하듯이 ’35mm! 100mm!’ 렌즈 콜을 기분좋게 외친다. 그 움직임에는 반복적으로 훈련한 운동선수의 동작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다들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시간에 쫓기는 표정을 찾을 수 없다. 그동안 수없이 연습한 기술과 팀웍이 기가 막히게 맞아들어가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승리가 코 앞이다.

그날 강백호와 서태웅 등을 여럿 보았다. 아마 6~70대가 되면 그날의 순간들을 닳고 닳도록 이야기 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