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기 — 드러나기

카메라를 단단히 고정시켜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문틈으로 스며 들어오는 바람이 허공으로 들어 올리는 펼쳐진 노트의 종이 한 장, 나뭇잎이 살랑이며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산란, 촬영자가 카메라를 고정해두고 몇 발짝 떨어져 다른 것을 하는 척하는 바람에 녹화 중인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앵글 안팎을 드나드는 작가의 자유분방한 걸음걸이…
카메라가 움직여버리는 순간 우리 시선 밖으로 내쫓길 연약한 것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모아서 무언가를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먼저 도구를 앞세워 강제로 드러내기보다, 드러나기를 기다림으로써.

마침 짐벌(Gimbal)이 유행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매년 일관된 방식으로 제작해오고 있는 <올해의작가상>의 현재 모습을 처음으로 기획했던 때. 주변을 둘러보면 너도나도 짐벌을 들고 뛰어다니고 있는데, 뭐라도 구별이 되는 작업을 만들려면 차라리 저 장비를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픽스샷으로만 찍기로 결정했다.

“트래킹숏으로 뛰는 말을 찍는 것은 멈춰 선 말을 찍는 것이다” — 장 콕토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카메라가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이고 있으면 비싼 화면이고 그렇지 않으면 단조롭고 돈 안 들어가는 화면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의 차이이기 이전에 미감(美感)의 차이다. 포획하려는 어류에 따라 그물의 조밀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그 감도를 다르게 설정하면, 방법을 바꾸면, 필연적으로 다른 순간들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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