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대도시 모퉁이에 조용히 자리 잡은 점포. 단골손님이 있고, 이따금 새로운 얼굴들도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런 손님들을 오너 셰프 혼자서 차분한 호흡으로 상대해나가는 분위기. 닮았다고 …
유리구슬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실수를 한 바로 그 순간의 눈빛을 본 경험이 있다. 평소 겉으로 강해 보이려 애쓰는 사람이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마치 어린아이가 그 눈 안에 갇혀있는 …
몰입하기
《힘을 낼 시간》에는 포커스 풀러(Focus Puller)가 없다. 어떤 장면이든 직접 포커스를 맞췄다. 광고나 뮤직비디오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고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한 숏의 길이가 길고 도중에 잠깐이라도 초점이 맞지 …
수학여행
촬영감독으로서 나에게 이 영화의 중심은 ‘수학여행’ 시퀀스다. 콘티는 아예 없었고 구체적인 상황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나갔다. 지금 시나리오를 다시 확인해 보니 여섯 줄 분량이다. 이 시퀀스의 마무리이자 정 점이 된 언덕 …
인간적인 규모
이런 표현이 조심스럽기는 한데 내게 남궁선 감독의 영화가 갖는 매력은 사랑스러운 멍청함이다. 그런 면모들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힘을 낼 시간》도 아이돌 산업의 스펙터클 이면에 감춰진 연약한 인물들을 다루는 영화다. 그러니까 화려하거나 …
공평한 배틀그라운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돈 주 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돈으로 살 …
눈
기획 초기에는 가사에 나타난 것처럼 봄, 가을 장면만 있었는데, 조감독의 아이디어로 눈 내리는 장면도 찍기로 했다. ‘어차피 내년 봄까지 기다릴 거면!’이라면서. 내 손으로 지옥문을 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결정한 그 …
계절
김동률 선배님의 지난 뮤직비디오들을 기획할 때마다 한 작품에 계절 하나를 오롯이 바친다는 마음이었다. 《답장》은 그 해 가을을 모두 바쳐 약 10회차 촬영을 진행했고, 《여름의 끝자락》은 발매 2년 전에 일찌감치 곡을 …
시간
2017년, 김동률 선배님은 앨범 공개가 반년 이상이나 남았을 때 《답장》 뮤직비디오를 의뢰했다. 거의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는 음악과 함께. 그렇게 이르고 이른 첫 미팅 때 마주 앉아 내게 건넸던 말을 여전히 …
크레딧,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장소
한 명도 빠짐없이 기록한다. 참여한 분들의 크레딧을 정리하는 일은 엄연히 작업 과정의 일부로서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신경 쓰는 부분이다. 직급과 무관하게. 각 팀의 막내, 인턴, 이동차량 기사님, 보조출연자들, 의뢰처의 담당자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