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THE ICON TV

어떤 영상은 말하고 싶어 한다. 현란한 효과를 동원하며 먼저 나서서 설명하려 든다. 어떤 영상은 듣기를 선택한다. 잘 옮기는 것에 충실하며 묵묵히 듣고, 들은 걸 고스란히 보여준다. <스튜디오 카스카>의 필름메이커 김선혁은 후자를 고집한다.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생생한 표정을 훼손 없이 전달하는 게 그에겐 중요하다. 가장 경계하는 건, 거짓말. 일이라는 이유로 거짓말하지 않는 것. 결국 내 얼굴로, 내 시간으로 기록될 것들에 어떤 핑계도 대지 않는 것. 그와 대화하며 알게 됐다. 잘 보고 잘 듣는 능력이란 단단한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할 일이 별로 없어서 어색하네요.(웃음) 저는 영상 만드는 김선혁이고요. 영상 쪽이라면 뭐가 됐든 딱히 가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필름메이커라는 표현을 쓰시던데요. 

그 단어도 고민을 좀 했어요. 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짧게 얘기할 수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필름메이커라는 단어면 영상 안에서 연출, 촬영, 편집, 기획 등을 다 하는 제 역할을 포괄하겠다 싶었죠. 

영상 제작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공도 영상 쪽이라고요. 

원래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모들의 영향이 컸는데, 이모 중 한 분은 당시에 디즈니 원동화를 그리셨거든요. 집에 가면 알라딘을 그리고 계셨다니까요.(웃음) 자연스럽게 그림 쪽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들어갔어요. 그때 애니메이션과의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서 지도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영상과로 틀게 된 거죠. 

현실적인 선택이었네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이 학교에 들어가는 게 우선인지, 애니메이션을 하는 게 중요한지 골라라. 전 그때 인문계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여서 일단 이 학교에 들어가는 게 중요했어요. 다행히 합격하고 애니메이션은 부전공이 됐지만, 주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하다 보니 오히려 더 그쪽이 맞는 것 같다고 느꼈죠. 결국 대학은 영화과로 갔고요.

(사진 제공 : 김선혁)

그럼 스튜디오 카스카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카스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건 2015년 9월부터예요. 제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결혼을 했거든요. 돈을 벌긴 해야 하는데, 저한테는 연애할 때처럼 아내와 반려견 마르첼로랑 같이 있는 시간이 제일 중요했어요. 그걸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예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자고 생각했어요. 프리랜서로 다시 시작한 일들이 조금씩 브랜드화되면서 카스카를 만들었고요.

카스카는 감독님 혼자 운영하는 ‘1인 스튜디오’잖아요. 그 형태를 고수하는 건 아내 분, 마르첼로와 함께하는 일상을 방해받지 않기 위함인가요?

그렇죠. 일과 일상이 분리돼야 한다기보다 우선순위가 있다는 게 커요. 아무리 제가 영상 일만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해도, 결혼한 이후로는 아내랑 마르첼로랑 매일 같이 있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근데 제가 만약 큰 조직에 들어가면 선택하는 게 힘들어지잖아요.

내 맘대로 일상을 컨트롤하는 게요?

통제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을 때, 일단 저는 다 포기하고 그냥 집에 있자 싶었어요. 그 욕망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그럼 작업 방식의 측면에서는 왜 1인 스튜디오여야 할까요? 다른 인터뷰에서는 ‘인간적인 규모(human scale)’를 중요시한다고 이야기하신 적도 있어요.

일단 매 작업마다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근데 규모가 커지다 보면 그 사람들이 같이 먹고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게 되고, 구성원들이 고르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획을 찾게 돼요. 특정 톤 앤 매너의 모션그래픽을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프로젝트마다 모션그래픽이 들어가는 방향으로 기획한다든지 하는 거죠. 좋게 얘기하면 스튜디오의 개성이 생길 수도 있는 거지만, 아주 폭이 넓어지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대신 프로젝트마다 모였다 흩어졌다 하다 보면 생기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요.

같이 하는 친구들이 바빠서 스케줄 맞추는 게 쉽지 않은 거? (웃음) 그거 말고는 딱히 어려운 게 없어요. 그러니까 이 방식을 유지하겠죠. 지금 촬영이나 조감독 도와주는 친구들은 저한테는 너무 각별한 관계거든요. 근데 규모를 늘리고 월급 주면서 계속 같이하는 구조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생각했을 때 그건 아닐 것 같았어요. 학교 다닐 때처럼 즐겁게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오히려 가까울수록 기본적인 거리를 필요로 하는 거니까. 그게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겠다 싶었어요.

건강한 거리감이네요.

예를 들면 조감독 친구는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데 저랑 같이 커머셜 작업만 하다 보면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게 될지도 몰라요. 근데 여건이 맞을 때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되게 좋거든요. 영화 찍을 때 답답했던 게 이걸 하면서 풀리는 거죠. 만약 제가 카스카라는 이름 아래 이 친구를 잡고 있었으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제가 상상한 편협한 가능성에 가둬버렸을 거예요.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말해왔어요. 자라온 환경, 성격, 취향 다 다른 모습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우리한테 필요한 건 느슨한 연대다. 근처에 있자. 꼭 같이 뭘 운영하진 말고.

근처에 있자. 

2, 3년 사이에 제 주변이 다 바뀌었거든요. 후배들이 많이 도와주곤 했는데 그 친구들이 다 감독이 되고 촬영감독이 되고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아요. 그렇다고 우리 이제 남이다, 이건 아니거든요.(웃음)  계속 만나면서 제가 도움받을 일이 더 많아져요. 그게 더 고맙더라고요.

서로 같이 성장하니까요.

다행히도요. 정말 보고 싶었던 그림인데. ‘우리가 즐겁게 촬영했는데 내일도 그렇게 되면 충분한 거 아냐?’라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 끌어주려고 한 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방식이 결과물의 퀄리티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건가요?

그런 믿음 가지고 하는 거죠. 방법이 다르면 필연적으로 결과도 다를 거라고. 저는 이런 ‘관계’들이 곧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촬영팀 막내 친구가 현장에서 갑자기 말해요. “형, 지금 여기 빛 들어오는 거 진짜 이쁜데 찍으실래요?” 전 반대쪽을 찍고 있었는데. 그런 순간들이 저한테는 큰 힌트거든요. 딱딱한 관계 속에서 일하면 누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애정 갖고 해주겠어요. 연출부 막내가 감독한테 어떻게 그래요. 이건 순전히 각별한 관계에 빚지고 있는 거예요. 제가 작업해온 것 중에 그렇지 않은 게 없었어요. 

작업물 얘기를 좀 해보죠. 2016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다큐멘터리와 광고 작업을 4년간 이어오고 있습니다. 신뢰를 얻은 비결이 뭘까요. (웃음)

일단 저와 결이 잘 맞는다고 보시는 것 같아요. 제가 미술을 하신 어머니 영향으로 미술관에 친숙하기도 하고 장민승 작가님 전시 작업에도 꾸준히 참여했는데, 그런 부분들 덕분인지 실제 아트신(scene)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올해의 작가상 프로젝트 작업 전에도 작가들의 작업실이나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거든요. 직접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공간도 촬영할 수 있다는 게 되게 설렜죠.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다 전해지겠네요. 

그렇죠. 본인이 애정이 있으니까 더 구체적인 걸 발견하고, 더 깊게 고민한다고 생각하시죠. 작가 인터뷰를 하러 가면 순간의 작은 제스쳐랄지 집이나 작업실의 분위기랄지 하는 것들이 미지의 영역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주거든요. 그걸 제가 다 느끼면서 반응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재미있게 작업하는 모습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올해의 작가상 2019

브랜드 다큐멘터리 영상도 많이 하고 있죠. 단순한 광고를 넘어서 브랜드가 가진 본연의 가치와 이야기가 잘 전달된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보고 있으면 설득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좋은 거예요. 정말 생생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어서. 

저한테는 클라이언트가 되게 신기한 존재예요. 이 일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제가 모르는 걸 알고 있고 완전히 미지의 영역인데, 또 작업을 대하는 자세나 살아온 과정을 들어보면 동질감을 느끼기도 해요. 이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의 실제 모습이 저에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오니까 화면에도 생생한 표정들이 담기는 거겠죠? 일을 하면서 가장 지키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거짓말하지 말자’거든요. 일 때문에 거짓말하기 쉽잖아요. ‘일이니까…’라는 이유로. 저같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광고를 만드는 전달자는 억지로 ‘드러내기’ 보다 그들 스스로 ‘드러나기’를 돕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명인명촌

트리플래닛 

카스카의 영상들은 대체로 과도한 장치를 안 쓴다는 느낌입니다. 깔끔하고 정제돼 있다고 해야 하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인가요?

성격의 일부인 것 같기도 해요. 모든 걸 다 가지고 시작하지 않거든요. 예를 들면, 예산 견적서를 기형적으로 짜요. 이거는 조명을 하지 말자. 이거는 아예 미술을 하지 말자. 일단 기획 단계에서 균형을 무너뜨리죠. 그럼 남겨놓은 부분은 정말 잘해야 하잖아요.(웃음) 어쨌든 결국 끝까지 남는 무기는 촬영이라 생각해서 다른 요소들은 계속 줄여요. 개인적으로 저는 촬영이 가장 거짓말 안 하는 것 같거든요. 객관적으로 상황을 가져올 수 있는 도구니까. 빠르게 분할화면 넣고 화려한 모션그래픽 있는 것도 좋고 멋있는데, 제가 주로 전달하는 상황은 그런 종류가 아닌 것 같아요. 공간이나 사람이 주는 분위기를 묘사하는 쪽에 가까우니까. 

거짓말하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한 거군요.

또 한편으로는 작업에 세세한 부분까지 제가 만지려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해요. 워킹 스몰(working small)의 관점을 추구하니까. 저 혼자서 다 할 때 볼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제가 가진 관심의 총량은 한계가 있으니 어느 정도 수준에서 딱 끝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럼 뮤직비디오 작업의 경우는 어떤가요. 김동률의 <답장>이나 노 리플라이의 <여정> 뮤직비디오가 정말 좋았거든요. 브랜드 다큐멘터리나 <올해의 작가상> 작가 인터뷰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게 있나요?

다른 작업들은 아무리 제가 크리에이티브하게 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기획 단계에서 이성적으로 세팅을 한다고 해야 할까. 디자이너가 매거진을 기획할 때 내용 파악하고 정보의 위계를 세우고 알맞은 그리드 시스템을 만드는 것처럼, 어떤 룰을 많이 만들어요. 근데 뮤직비디오는 좀 다르더라고요. 더 직관적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직접 시나리오부터 써야 해서 그런지 정말 제 안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좀 더 ‘창작’하는 듯한 기분인 거네요. 

브랜드 작업의 클라이언트는 말하자면 시나리오 작가 같거든요. 그분들 이야기를 공들여 듣다 보면, 이미 어느 정도 시나리오가 나와요. 근데 뮤직비디오는 외부에서 끄집어 오는 것보다 내 안의 뭔가를 내보내는 기분이 들어요. 내 손으로 쓴 시나리오로 영화 찍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분명 내 이야기고, 해방감이 확실히 있어요.

김동률 – 답장

노 리플라이 – 여정

두 작업을 병행하는 게 밸런스가 맞겠어요.

그런 밸런스가 되게 중요하죠. 뮤직비디오는 일 년에 맥시멈 두 개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한 달에 서너 개씩 하는 건 상상도 못 해요. 하나 했으면 다른 카테고리로 넘어가야 호흡이 맞더라고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작업 같은 게 있어요?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도 좋고요. 

제가 계획을 안 세우는 게 계획인 사람이라. (웃음) 뭘 구체적으로 하겠다는 건 없고요. 결국에는 이 작업들이 제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이고 제 얼굴이 돼 있을 텐데, 매 작업에 거짓말하지 않고 싶어요. 모두가 다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걸 만든다기보다는, ‘아, 그러게.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여기 있네?’, ‘이렇게도 하는 사람이 있네.’ 하는 피드백을 받고 싶어요. 어두운 밤에 허허벌판에서 ‘이런 게 있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라는 전파를 자꾸 흘려보내는데 어느 순간 뜻밖의 기분 좋은 회신을 받는 것처럼요. 그렇게 하나하나 모험 아닌 모험을 해야겠다는 태도 말고는 계획을 잘 안 짜려고 해요.

Studio Caska 스튜디오 카스카
“things they’ll never see”
caska.kr/

에디터: 김정현
포토그래퍼: 정찬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