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늘은 유독 이설씨와 육교 장면을 촬영하던 때 같아서, 그리고 어젠 어김없이 불꽃놀이가 서울을 밝히는 바람에 오래된 작업이 다시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뮤직비디오 《답장》은 모두 ‘공공장소’에서 촬영했다. (모두가 아는 그분이 나오는 장면은 제외하고) 원한다면 누구나, 언제든지 가볼 수 있고,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이미 매일 같이 봐오던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뮤직비디오가 아티스트를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항상 고민한다. 그렇다면 노래가 처한 어려움이란 뭘까? 기획의 초입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발매 직후에 아무리 큰 인기를 누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듣는 사람은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연 현상이나 다름없는 이 부분을 그때는 왠지 좀 거스르고 싶었는데, 허우샤오셴의 영화 《카페 뤼미에르》에 흠뻑 빠져있을 때 코엔지, 짐보초 등 그 영화의 로케이션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 장소들이나 그곳과 비슷한 곳을 지나칠 때면 그 영화가 다시 생각난다. 그리고 그중 몇 번은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 개봉한지 20년이 넘었어도 상관없다. 그렇다면 뮤직비디오의 ‘장소’가 이런 트리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비싼 섭외료를 지불하고 대여한 장소는 감상자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 어마어마한 양의 목재로 지어올린 세트라면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남김없이 부서진다. 이런 것들은 화면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공공장소라면 일회성을 탈피해 노래와 감상자 사이에 보다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만들 거라고 믿고 있다.
강변북로는 공적인 장소이며 반영구적인 풍경이다. 목적에 부합했다. 불특정 다수로 하여금 노래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한 번이라도 더 이 노래를 듣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계기’가 되는 것이 음악이 주인이고 영상이 손님인 뮤직비디오의 최우선 기능이라고 여긴다.
이런 고민 외에 이 노래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하는 물음도 있었다. 배우 이설씨가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던 강변북로 한강철교 지점은 3년간 나의 출퇴근길이기도 했는데, ‘느릿느릿 흘러가는 퇴근길의 차 안’이 문득 이 노래에 빠져들기에 최적의 음감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홀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차 안이란 공간은 혼자 있는 집의 거실처럼 지극히 사적인 장소여서 우리는 아무런 검열 없이 온갖 생각들을 방류시키곤 한다. 한때는 서로 신체의 일부처럼 밀착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생사조차 모르는 관계들에 대한 모종의 호기심 같은 것도 분명 이 중 하나다. 특히 그곳이 극도로 정체된 해 질 녘 강변북로 위라면 그저 그 안에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걸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의 흐름에 나를 내맡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런데 이곳이 그 어디보다 스피커 볼륨을 내 맘껏 올릴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운 좋게 해 질 녘 노을까지 선명하다면, 뮤직비디오에 나온 그 장소들이 자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내 주위에 360도로,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럼 별 수 있겠어? 한 번 또 들을 수밖에.
좋아하는 영화가 촬영된 로케이션을 샅샅이 찾아다닌 경험이 몇 번이나 있는 사람으로서, 나와 비슷한 분들께 이 작업은 언제까지나 접점을 유지하기를 희망하며 이렇게 만들었다.
P.S: 불꽃놀이를 끌어들여온 것도 마찬가지. 매년 할 테니까. (코로나가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