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촬영감독으로서 나에게 이 영화의 중심은 ‘수학여행’ 시퀀스다. 콘티는 아예 없었고 구체적인 상황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나갔다. 지금 시나리오를 다시 확인해 보니 여섯 줄 분량이다. 이 시퀀스의 마무리이자 정
점이 된 언덕 오르는 장면도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 찍었다. 난간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
다 최성은 배우가 그 난간을 뛰어 넘어갈 줄도 아무도 몰랐다. ‘호오,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놀아보자!’ 태희와
사랑이도, 카메라도, 동시녹음도, 감독도, 스탭들도 차례로 난간을 넘었다. 황량한 파도 앞에 서고, 실없는 장
난을 치고, 저 멀리 달려가는 순간까지 모두 한 번에 촬영했다. 그렇게 한 테이크. 리허설 없이.

이 영화가 이렇게 자유롭고 즉흥적인 모습이길 바랐다. 장편 길이에서 모든 장면들이 그럴 수는 없지만 가능
한 배우의 연기를 속박하지 않고, 약속된 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미리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만 배우
못지않게 나 또한 그때그때 깊숙이 몰입해서 카메라가 그들의 행동과 변화에 제대로 반응하는 것에 최선을 다
했다. 그 바램대로 구현된 것이 이 시퀀스이기에 나에게 《힘을 낼 시간》의 중심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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