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딧,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장소

한 명도 빠짐없이 기록한다.

참여한 분들의 크레딧을 정리하는 일은 엄연히 작업 과정의 일부로서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신경 쓰는 부분이다. 직급과 무관하게. 각 팀의 막내, 인턴, 이동차량 기사님, 보조출연자들, 의뢰처의 담당자분들, 도움 주신 분들… 거의 강박적으로 이름들을 수집한다. 그리고—완성된 영상에는 올리지 못해도—카스카의 웹사이트에는 빠짐없이 기록해둔다.

연출로서 일하고 있는 지금은 한 해의 작업들을 손가락을 몇 번 놀리면 모두 셀 수 있지만 촬영팀에서 일했던 때는 한 달에 10~20번 현장에 나갔다. 1년이면 못해도 200여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어서 당사자인 나조차도 그 모든 촬영 현장이 생각 나진 않는다. 그러다 보면 그 시간들이 사라진 것 같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가는 모래들처럼. 유년기에 살던 동네를 차지한 이름 모를 대형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낯설고 쓸쓸한 기분이 된다. 그 시간들은 도대체 뭐였을까.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도 그렇게 소비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가능하다면 이런 마음에 응답하고 싶다.

내 경우 아무래도 처음 일했던 현장은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기억하기 때문에 검색해 본 적이 있다. 우연히도 어떤 기사자료에 그 광고 현장 사진이 몇 장 있었고, 그중에 막내로 처음 출근한 당시 내 모습도 작지만 찾을 수 있었다. 이게 왠지 나는 무척 반가웠다. ‘그래! 땀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했던 그날이 세상 어딘가 한구석에는 자리를 잡고 있구나!’

크레딧은 그런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함께 한 그날들이 여기에 있다. 이 작업의 뒤에는 내가 있다.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찾아낼 수 있는 장소로서 크레딧은 항상 제 자리를 지키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애썼던 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오늘 역시 감독으로서 헛되지 않게 만들 것이라고. 시간을 들여 그런 서로의 마음들을 형성(形成)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p.s: 카스카의 홈페이지 중 archive 페이지(마지막 사진 참고)에서 우측으로 마우스 커서를 가져가 보면 숨겨진 ‘검색 버튼’이 나온다.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면 참여한 작업들의 목록이 나온다. 나도 우연히 최근에 알게 된 기능인데 재밌어서 가끔 사용해 본다. 분명히 내가 참여했는데도 이름을 찾을 수 없으면 hello.caska@gmail.com으로 신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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