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배틀그라운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돈 주
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해가 갈수록
값비싼 첨단 촬영 장비들이 끊임없이 우리 손에 쥐어지지만. 좋은 핸드헬드 촬영과 자연광이 그렇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현장이 유려하고 복잡한 카메라 무브먼트를 가능하게 해 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게 좋은
핸드헬드 촬영을 담보하진 않는다. 그건 온전히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의 손끝’에 달렸다. 또, 일조시간대에 야
외에서 촬영할 때 조명은 태양을 이길 수 없으며 조명장비를 사용할수록 그 장소의, 그 시간대에만 나타나는
고유한 빛과 색이 사라지고 만다.

독립 영화 제작을 앞둔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압도적 규모의 적군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보잘것없는 나라의
장수 같아서, 저들처럼 섣불리 전의를 불태우고 분기탱천한다면 다 죽는다는 걸 안다. 열세지만 어떻게든 유
리한 장소로 끌어내서 이길 수 있는 전투를 해야한다. 그래서 남궁선 감독과—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무엇
보다 고민했던 지점은 ‘어디서 싸울 것인가’, 우리에게 ‘공평한 배틀그라운드’라는 건 무엇일까,였다. 그런 면
에서 이번 영화가 저예산 독립장편이더라도 핸드헬드와 제주도의 자연광(적극적인 로케이션 촬영)은 싸워볼
만한 지형으로 여겨졌다.

그러고 보면, 영화 안에서 태희도 이런 말을 한다.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