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구슬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실수를 한 바로 그 순간의 눈빛을 본 경험이 있다. 평소 겉으로 강해 보이려 애쓰는 사람이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마치 어린아이가 그 눈 안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리구슬 같은 눈 안에.

시나리오에서 기절한 수민을 둘러싼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묘사되어 있던 백스테이지 회상 장면은 이때의 강렬했던 개인적 체험이 번져서—어지럽고 사실적인 점프컷들에서—원씬원컷의 주관적인 익스트림 클로즈업 하나로 모아졌다. (패닉에 빠진 수민의 입장에서) 인간이 감각하는 방식을 고려해도 극단적으로 시야가 좁혀진 방식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더해 빛과 사운드가 동기화되는 분위기를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수민이 눈을 떴을 때 다급한 사람들의 아우성들은 먹먹하게 들린다. 돌연 손전등 빛이 강하게 눈을 밝히면 수민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날카롭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소리들을 상상했다. 하지만 무감한 눈빛. 그리고 서서히 밝아지며 소리들도 잦아들고 백화(白化, blooming) 된 화면에서 얼마 간의 여백을 둔 뒤 다음 장면의 빛으로 연결하자고.

이 장면을 머릿속으로 준비하면서 어쩌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바라본 눈의 이미지가 이 영화를 잘 대변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주인공들은 모두 갇혀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수민은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그에 따른 죄책감에. 태희는 공정하지 못한 계약으로 소속사에 두 손 두 발 묶여있다. 사랑이는 예라에 대한 생각에. 그런 분위기에 혼자 남겨진 씬들에서 각각의 눈 클로즈업을 찍고, 그것들이 한데 모인 포스터를 상상하기도 했다. 영화 《몽상가들》의 포스터처럼 3분할 된 화면에, ‘힘을 낼 시간’이란 제목이 세로 쓰기로 넘나드는데 어딘가 압도되고 잠식당한 듯한 눈만 세 개 보여주는 식으로. 왠지 의문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면서. 물론 이런 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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