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The Studio

<The Studio>는 스튜디오 펩스의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영상 프로덕션이자 비주얼 작업을 기반으로 하는 스튜디오로서 다양한 고민들,

그리고 그 힌트가 되어줄 만한 이야기를 다양한 분야의 스튜디오 운영자들과 나눴습니다.


EP.2 

caska

영상 제작은 기획, 연출, 촬영, 편집, 색 보정, 디자인 등 많은 역할을 필요로 한다. 그 외의 분야라고 다르지는 않다. 모든 전문 영역은 다양한 역할로 세분되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한 가지 역할에 집중하며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의 길을 걸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러 역할을 병행하며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서 유연한 관점을 가질 것이다.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의 두 가지 방향으로만 나눈다면, 카스카의 김선혁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다. 카스카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영화, 뮤직비디오, 순수예술 등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은 영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1인 스튜디오로, 운영자인 김선혁은 스스로를 ‘필름메이커’라 소개한다. 영상 제작의 모든 과정을 홀로 도맡아 온 그만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단어다. 제너럴리스트이자 스페셜리스트로서, 영상에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깊이를 더하고자 노력한다.

업을 대하는 장인에 가까운 태도는 건축과 가구에 대한 비유에서도 느낄 수 있다. 김선혁은 건축과 가구 모두 구조를 세운다는 점에서 동일한 속성을 가지지만, 가구를 만들 때 조금 더 ‘내 것 같은’, ‘나를 닮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내 손으로 느끼고, 만들어가는 감각. 이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카스카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규모와 방식으로 꿋꿋이 나아갈 것이다.


모든 과정이 연출 

김예찬 아무래도 카스카가 동종 업계 스튜디오이다 보니까, 듣고 싶은 얘기가 많더라고요. 닮은 부분도 많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카스카의 처음에 대한 질문을 좀 하자면 시작은 2015년쯤이었던 건가요?

김선혁  카스카(caska)라는 이름으로 혼자 사업자를 낸 건 2015년이고요. 그전에 4년 정도 대학 선배가 만들었던 스튜디오에서 몇몇 멤버들과 같이 활동했었죠.

김예찬  안 그래도 이력으로 적어 놓으신 걸 보니까 2009년에 첫 번째 필모그래피가 나왔던 것 같더라고요.

김선혁  그때는 제가 학교에 다닐 때였을 거예요. 2011년에 졸업했고, 그때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김예찬  거기서부터 비슷하게 느꼈던 게, 저희도 2010년쯤 시작을 했거든요. 그때 당시 이름은 모자이크였고,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아카이빙하는 종류의 작업을 했었어요. 영상에 대해서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고요. 그게 홈리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이어지면서 영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죠.

김선혁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쭉 영화를 전공했고, 촬영 감독을 목표로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당장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촬영 조수로 일하려고 이곳저곳 알아봤지만 그때 영화 촬영팀은 바로 일할 곳을 찾지 못했어요.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지인이 유명한 광고 촬영 감독님 팀에서 막내를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가 아닌 영역으로 나간다는 것은 그전까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가릴 처지도 아니고, 막연하지만 영화와 광고 모두 ‘카메라’를 다루는 매체니까 일단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어렸을 때 동경했던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촬영하셨던 분이란 걸 알고 그 팀에 주저 없이 연락드렸어요. 시작하기 전에 고민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 달, 두 달 일하다 보니 의외로 광고 촬영이 저에게 더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막상 결혼 후에는 제 형편상 구할 수 있었던 당시 신혼집에서 장비렌탈샵이 너무 멀어서 팀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출퇴근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대학 선배가 만들었던 스튜디오에서 4년여 고군분투했고, 2015년 9월에 1인 사업장인 ‘카스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김예찬  1인 체제로 바꾸면서 변화한 것들도 있었나요?

김선혁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촬영감독으로서 활동하는 것에서 차츰차츰 연출자로서의 프로젝트 비중을 늘렸고, 카스카를 시작할 때는 온전히 연출자로서만 활동하기로 결정했어요. 연출자로 어느 정도 작업을 해보니까 저는 연출을 하면서 동시에 촬영도 같이할 수 있는 작업을 가장 좋아한다는 걸 알았죠. 브랜드 다큐멘터리 방식의 작업을 선호하는 것도 제가 직접 찍을 수 있고 또한 연출로서 전체 기획과 현장 상황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어서예요. 그럼에도 여전히 촬영감독으로만 참여하는 작업도 가끔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제가 연출로서 활동하는 분야 밖으로만 제한합니다. 미술 전시나 장편영화에 촬영 감독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컬러리스트로서도 장편영화에 3편 참여했는데, 이 경험들 모두 제가 연출자로 다시 돌아갔을 때 어떻게 자기 작업에 접근해야 할지 다른 분야의 연출자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들이 많았어요.

김예찬  그러면 프로젝트 선정 기준 같은 게 따로 있으신가요? 어떤 프로젝트에 어떤 역할로서 참여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김선혁  저는 1년에 보통 프로젝트를 10개도 안 할 때가 많아요. 가령 한 프로젝트에 2개월이 소요된다고 할 때 연출만 한다면 같은 기간에 4개든 8개든 더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멀티태스킹을 해야겠죠. 그 점이 저에게는 좀 버겁습니다. 주의가 산만해져요. 절대적으로 동일한 2개월이라면, 저는 하나의 프로젝트와 친밀하게 보내는 편이 더 좋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기획부터 연출, 예산 관리, 촬영, 편집, 색 보정, 믹싱 등 많은 부분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것 또한 멀티태스킹일 수 있지만 한 프로젝트 내에서 일어나는 멀티태스킹인 것이죠. 그와 동시에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해 나갈 때의 장점이 있다고 느껴요. 해당 분야의 전문가보다 기술적으로 다소 단순하거나 미흡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구체적인 관점, 취향, 의견이 계속해서 덧대졌을 때 생기는 매력이 분명히 있다고 믿거든요. 촬영, 편집, 색 보정, 디자인, 믹싱, 예산 편성까지 어떻게 보면 영상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연출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다 연출로 보여요.

김예찬  기획 과정에서는 작가의 필요성을 느낄 때도 있지 않나요?

김선혁 작가가 사전 인터뷰도 하고 리서치도 하겠지만 결국에는 카메라에 찍힌 걸 토대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 전통적인 작가 역할을 배제하고 가거나 선택적으로 분산시켜서 제가 연출로서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랑 조감독이 사전 미팅, 답사, 리서치도 직접 해요. 아주 전문적인 수준은 못 되어도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어떤 포인트를 건드리면 되겠구나 정도는 충분히 숙지하면서 인터뷰 촬영을 하는 거죠.

김예찬  다큐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저희도 비슷한 편이기는 해요. 감독이 전면으로 나서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모든 스터디를 마친 다음에 작업에 들어가는 게 마음이 편한데 최근 1~2년 사이에 저희도 그런 고민이 들었어요. 클라이언트가 작가 롤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방송 작가들을 쓰자니 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매거진 에디터들과 작업할 기회가 생겼는데, 잡지의 본질 자체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직접 로케이션도 상상하고 그림도 그려보고 때로는 PD의 역할까지 하면서 스케줄을 잡기도 하니까, 기획과 연출, 그리고 후반의 편집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에디터 입장에서도 잡지 산업은 점점 내려앉는 상황이고 디지털화된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서 6개월 정도 협업을 먼저 해봤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그 방식이 잘 맞는 것 같아서 그중 한 분과 100% 합류를 해서 같이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으니까, 저희로서는 좀 획기적이라고 생각한 거죠.

김선혁 그런 작업자가 옆에 있으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긴 해요. 인터뷰할 때 인터뷰이와 눈 맞춤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카메라 세팅도 신경 써야 하고 녹음 레벨은 어떻고 이런 기술적인 요소들 때문에 정작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운 때가 많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인터뷰어로서 작가가 있다면 그런 부담은 좀 덜 수가 있겠죠. 대신 좀 더 포괄적인 영상 연출에 신경 쓰면서 영상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들이 너무나 많고요.

김예찬  저랑은 그 부분이 좀 다르긴 하네요. 저는 제가 인터뷰하면 ‘촬영 감독님이 알아서 잘 찍어주겠지, 나는 인터뷰이와의 대화가 더 중요하니까’ 이렇게 생각해 버려서 그림에 소홀해질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리고 현장에서 에디터의 역할은 전체 맥락 안에서 내용이 벗어나지 않고 잘 가고 있는지 예민하게 듣고 체크하는 역할이 큰 것 같아요. 감독이 전체 그림을 파악하고 인터뷰를 진행하지만, 함께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게 안심이 되더라고요. 프로젝트에 따라 에디터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감독이 뒤에서 길라잡이가 돼 주기도 합니다.

김선혁  작가로서 저와 맞는 협업자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긴 한데 어려운 문제죠. 그런 쪽이 전문화되어 있지는 않잖아요. 드라마면 드라마, 예능이면 예능, 다큐면 다큐 이런 식으로 방송에서는 분야가 정확히 나누어지지만 저희가 하는 작업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보니 딱 맞는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긴 한 것 같아요. 다만 이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들이 궁극적으로 텍스트가 아닌 영상이라는 매체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저는 좋은 작가와 협업하는 것이 갖는 가능성 이전에 촬영, 편집을 포함한 연출 감독의 역할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고 믿어요. ‘텍스트로 사전에 이루어진 기획’, ‘인터뷰 질문과 응답’이라는 내용과 ‘영상 언어’라는 형식이 분리되는 것은 그만큼 평이한 결과물을 낳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구성작가가 맡는 기획과 사전 조사는 당연한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의뢰주가 별도로 작가 섭외를 요구할 때는 이 부분을 잘 설명드린 후에 연출로서 제가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김예찬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연출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감독님은 거의 모든 영역을 다 잘 하시니까 지금 이런 방식으로 계속 일하실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네요.

김선혁  저는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시대가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 기술이나 환경이 변함으로 인해서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의 범위와 깊이가 달라졌고, 저는 그것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어요. 딜레마도 있어요. ‘한 우물만 제대로 파야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이종(異種)이 되어도 괜찮은 건가.’ 자주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이라도 용기를 가지려고 ‘원래 이런 게 연출 아냐?’라고 혼잣말을 해요. 태생적으로 연출은 모든 면에 있어서 비전문가일 수밖에 없으니까, 이건 내가 선택한 거니까. 깊이가 얕을 순 있어도 조금 더 시야를 넓게 가지려고 해요.

김예찬  이미 얕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김선혁  그렇게 느끼신다면 그건 아마도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준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아직 고민도 많고 무섭습니다. 어차피 이런 건 시간이 지나도 수월해지지 않으리라 봐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김예찬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찰떡같이 해몽해 내는 것 역시 시간이 도와주는 일 같기는 한데요. 특히 감독님은 영화를 하셨다 보니까 더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들을 굉장히 잘 해내고 계신 것 같아요.

김선혁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카운셀링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에는 의뢰주가 없잖아요. 영화만 하다 광고 쪽으로 넘어가면서 가장 신선했던 것 중 하나는 ‘의뢰주’라는 존재였거든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 분야를 전공해서 그런지 ‘정말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비슷한 전공을 가진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의뢰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은 교육자, 농부, 공무원, 조향사, 벤처 사업가, AI 전문가, 의사, 큐레이터, 음악가 등 직업도, 살아온 인생도 정말 달랐어요. 그런데 그게 낯설고 어려운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신기하고 궁금한 거죠.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이에요. 심지어 친구들과 만날 때보다 의뢰주랑 만날 때 압도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나게 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나는 저 사람이 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저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이 공감대가 생기면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우리가 서로 마주 앉아야 할 이유를 분명히 찾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김예찬  작업에 있어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가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겠네요.

김선혁  의뢰주도 영상을 함께 만드는 동료라는 느낌이 강해요. 그래서 크레딧에 항상 의뢰주 개개인의 이름을 나란히 적죠. 감독인 저에게 가장 신비로운 존재이면서도 올바른 방향에 대한 힌트를 가장 많이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익숙한 어휘로 표현하자면, 저는 연출이고 그들은 작가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 그렇게 미팅 때 자주 말씀드려요. ‘나는 연출이고, 당신은 작가다. 여기 마주 앉은 우리 모두 이 영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필름메이커다.’ 그래서 역으로 업무를 드리기도 합니다.

김예찬  공감이 많이 되네요. 저에게도 클라이언트 잡을 통해서 만나는 담당자나 인터뷰이들의 이야기가 계속 자양분이 되어주거든요. 클라이언트 쪽에서 먼저 구체적인 기획을 가져올수록 우리가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죠.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하면 뾰족한 방향으로 진전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김선혁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바로 말씀드려요.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김예찬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 같아요. 이 프로젝트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서 우리를 찾았냐, 이런 것들이죠. 한편으로는 프로덕션의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도 해요. 보통 프로덕션에서 PT를 하면 제일 강조하는 게 ‘어떤 그림들을 어떻게 예쁘게 찍을 것이다’라는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가 어떤 프로젝트의 PT를 하면서 주안점을 뒀던 건 인터뷰이한테 어떤 식으로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 정해진 컷과 컷 사이에 상황들은 어떤 식으로 팔로우하고 새로운 장면들을 건질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그러니까 클라이언트 쪽에서도 좀 신선해하고 저희도 재미있더라고요.

김선혁  이것도 기획, 연출의 일부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만드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그런데 그건 다 예산이랑 관련된 얘기죠.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 거냐는 건데, 이건 내용에 앞서 방식에 관한 문제가 돼요. 이때 저는 기형적인 예산서를 만드는 걸 선호합니다. 모든 팀을 다 갖추려고 하기보다 그중 특정 팀에 예산을 집중시키거나, 스탭을 줄이고 촬영 회차를 압도적으로 확보한다거나. 내용에 관련된 구상을 하기 전에 이런 전술을 먼저 정하려고 노력해요. 만드는 방식이 다르면 결과물은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저한테는 가장 흥미진진한 단계인 것 같아요. 구체적인 스토리, 콘티를 짜고 이런 것들은 그 뒤의 일이고요.

김예찬 한편 저희는 이런 고민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규모가 큰 기업의 광고주들은 많은 경우에 대행사를 쓰잖아요. 그러면 대행사에서 여러 가지 기획안을 짠 다음에 그거에 어울리는 프로덕션을 섭외해서 결과물을 만들고요. 그런데 만약 클라이언트 쪽에서 다이렉트로 연락을 주시면 저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오리지널한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그걸 영상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오리지널 커머스’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영역의 일들을 조금씩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카스카에서는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한 작업을 먼저 많이 해오신 것 같은데, 더 많은 팀이 하나둘 그런 작업을 하게 되면 분명 서로 좋은 영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선구적인 결과물 하나가 나오면 다들 그걸 레퍼런스 삼으면서 다각도로 파생이 되니까요.

김선혁  저도 그런 걸 하고 싶기는 한데요. 먼저 의뢰가 들어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어려운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오리지널이라는 건 정말 감독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거잖아요. 연출로서 더 많은 시간과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물론 과거에 비해서 기업이 먼저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콘텐츠를 만들려는 흐름은 생긴 것 같은데요. 지금 이상으로 활성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하면 그런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기업의 가치를 남들과 다른 선상에 올려놓기 위함이잖아요. TV CF처럼 상업적인 매체가 아니라 객관성을 상징하는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를 활용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줄이고 신뢰를 확보하려는 전략이죠. 저도 그게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게 계속해서 나온다고 상상하면 사람들은 이것 또한 영악한 변종 광고라고 받아들이는 시점이 올 것 같아요. 이제는 어느 정도 흔한 광고 전략 중 하나가 돼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김예찬  저도 그 부분에 동의해요. 그래서 기업의 이야기가 아닌 제작자의 관점에서 좀 변주를 줘보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는 단계인 것 같아요. 기업 내부자가 이야기하는 기업의 이야기는 이제는 흔하니까 그 넥스트로는 뭐가 있을까, 여전히 가려운 부분은 있고, 그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김선혁  이런 방법이 있을 수 있겠네요. 다뤄야 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보여주지 않는 거예요. 특정 인물에 대해 다뤄야 한다면 그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한 묘사를 하는 거예요. 그것들이 축적되면 정작 주인공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아도 관객은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인상을 갖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만들 때 방법론으로서 안쪽에서 살점을 붙여가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부터 조각해 나갈 수도 있다는 거죠. 어떤 기업 얘기를 할 때도 지금까지는 해당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게 아니라 협력 업체만 잔뜩 나오는 게 방법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다른 접근을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홈리스 월드컵 다큐 촬영을 오래 하셨다고 했잖아요. 저는 그런 걸 잘 못해요. 연출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테크니션에 가까운 연출가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어떤 컨디션인지 알아야 그때부터 연구하기 시작하는데, 일단 돌아다니다가 뭔가에 꽂혀서 찍어보고 이런 성격은 못 되는 것 같아요.

김예찬  어떻게 보면 클라이언트 잡에 최적화되어 있는 연출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김선혁  아까 말했던 것처럼 카운셀링이라고 보는 거죠. 오리지널을 만드는 사람은 못 되고, 결국 의뢰업을 하는 것인데, 그 안에서 최대한 다른 어조를 취하려고 노력해요. 모순되는 말일 수는 있는데 특정 의도를 내포하고 있지만 시청자가 거부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끔 만드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카스카의 지향점

김예찬  8년 정도를 혼자서 해 오셨어요. 1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비슷한 생각이신가요?

김선혁  저는 수학 시간에 영어 공부하고 미술 시간에 과학 공부하는 부류의 사람이거든요. 싫증을 빨리 느끼다 보니 자꾸 옆길로 새요. 그래서 보시다시피 브랜드 필름,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영화, 전시 등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되고 그 안에서 맡는 역할도 상황마다 다릅니다. 근데 그런 자유로움이 저는 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저한테는 지금의 1인 체제가 가변적이어서 여전히 잘 맞는다고 느껴져요. 일을 시작한 지 10년 정도가 되었던 2022년에는 1년간 안식년을 가졌었는데요. 내 시간을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감각이 무척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내 삶이 복잡하지 않고 감당할 만하다’고 느꼈어요. 만약 책임질 동료나 직원이 있으면 절대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아요. 평상시에도 대체로 제가 선택한 시간에, 선택한 곳에서, 선택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동기부여도 용이하고 비교적 편안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외부 요인에 이것저것 내가 맞춰야 할 일은 비교적 적은 만큼 스스로에게 가혹하기만 하면 돼요.

김예찬  일하는 방식 외에 작업 과정이나 결과물에 있어서도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나요?

김선혁 아무래도 한 지붕 아래 여러 사람이 일하면 주어진 프로젝트를 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기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같은 그래픽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2D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3D를 잘할 수 있잖아요. 만약 우리 회사에 있는 디자이너가 2D를 잘하면 3D로 승부를 봐야 하는 기획은 은근슬쩍 지양하는 일이 있을 수 있죠. 실제 벌어지는 일들은 비교가 안 될 만큼 더 복잡하겠지만 아무튼 이러다 보면 누적되는 작업물이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아무리 잘 맞는 동료라고 해도 5년 뒤, 10년 뒤까지 추구하는 바가 비슷하리란 보장은 없거든요.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와 동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자의 방향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에요. 물론 그만큼 멀어지는 것만 같아서 외롭고 불안할 때도 있지만요.

김예찬 저희는 구성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가 적당한 거리감이거든요. 형태는 달라도 고민 자체는 비슷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혼자서 할 때 얻어지는 장점도 있고, 그 반대의 측면도 분명 있어서 조직에 대한 생각을 좀 여쭤보고 싶기는 했거든요. 규모를 키운다고 해도 무한 증식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김선혁  성장하는 것이 성장하지 않는 것보다 더 당연할 수도 있어요. 저는 누구나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분발하다 보면 크건 작건 성취가 생기고, 그런 시간이 쌓이면 의도하지 않아도 규모는 팽창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거죠. 다만 그 속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폭이 넓어지면서도 밀도를 잃지 않고 있는가’, 고민하면서 건강한 속도로 성장해야 하는 거죠.

김예찬  동의합니다.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성장 과정 안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김선혁  앞서 영화와 광고가 카메라를 주 도구로 사용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마찬가지로 건축과 가구를 견주어 보자면 구조를 세우는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해요. 하지만 투입되는 자본과 인력의 규모가 다르잖아요. 가구는 소규모 인원으로 혹은 혼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지만 건축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참여합니다. 이 두 가지 축 사이에서 어느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전 가구를 선택합니다. 만약 제가 건축가로서 어떤 건물을 만들었다고 상상해 보면, 그 결과물을 온전히 내 것이라고 느끼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건축은 상대적으로 익명적인 작업이라고 여겨지고 저는 그 감각을 선호하지 않아요. 그런데 가구는 결과물이 보다 내 것 같고, 내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훨씬 더 나를 닮았다고 느낄 것 같아요. 이런 걸 상상하면 지금까지 카스카(caska)로서 점유하고 있는 규모와 방식이 제게 더 이롭다고 느낍니다.

김예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량적으로든, 정성적으로든 계속 성장을 하게 되잖아요.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목표 지점 같은 게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하는 게 있으시면 들어보고 싶어요.

김선혁  아무래도 의뢰업을 하니까, 다음에 어떤 프로젝트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실제 그 구체적인 모습은 달라질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형태가 저에게 그렇게 중요한 부분도 아닌 것 같고요. 다만 연출을 하면서 동시에 제가 직접 촬영하는 현장이 더 많아지길 바라요. 현장에서 저는 연출만 하고 다른 촬영 감독이 찍으면 그건 그거대로 좋지만, 그럴 땐 아무래도 조금 비켜서서 혹은 좀 떨어져서 모니터링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가급적 카메라와 같은 각도, 같은 거리, 딱 그 위치에서 ‘나란히’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어요. 이 느낌을 말로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카메라는 제게 있어서 반려동물 같은 존재거든요. 반려 기계 같은 거죠. 매 작업은 그 아이와 나서는 산책 같아요. 모든 애견인이 그렇듯이 저는 이 아이한테 근사한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촬영 이전에 기획과 연출을 직접 해야 한다고 믿어요. 아무리 뛰어난 촬영감독이어도 기획과 연출이 펼쳐주는 상황 안에서 그 실력을 발휘하는 것인데, 촬영감독으로서 렌즈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그 아이 앞에 펼쳐진 풍경, 그러니까 환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가꾸고 싶어요. 그래서 제 옷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저 나름대로는 큰 용기를 내서 연출이란 책임을 도맡는 것이고, 심지어 그것보다 앞선 단계인 기획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거죠. 촬영감독만 할 때보다 실제 촬영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 한편으로 힘들기도 하지만요. 그 단계들을 모두 거치고 나서 다시 돌아와, 옆에 나란히 서서 그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마음껏 뛰어다니고, 나 또한 뒤엉켜 그 시간을 즐기고 싶어요. 그럴 때 렌즈를 보면 신이 난 아이의 눈망울처럼 보이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 감각만 지켜낼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할 겁니다.

Share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