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이야기: RVG

작곡을 하지도, 연주를 하지도 않지만,
음악을 만든다.

Rudy Van Gelder라는 오디오 엔지니어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평소에는 연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컬러리스트로서 장편영화에 참여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받았을 즈음에.

모던재즈의 세계관을 만들었다고도 평가받는 Rudy Van Gelder가 참여한 앨범들은 기라성 같은 재즈 뮤지션들의 이름 곁에 ‘RVG Editions’란 태그가 붙는다.
봉준호, 박찬욱 영화 포스터에 컬러리스트의 이름이 나란히 놓이는 격이다. 말도 안 되지.

그가 강조하는 마이크와 악기 간의 거리감, 수음 각도, 공간감, 정위, 마이크의 개수 같은 개념들이 영상에서 카메라가 갖는 개념들과 꼭 닮아서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갖는 재즈에 대한 막연한 애정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몇몇 앨범들로부터 출발하는데, 그때 ‘재즈라는 음악은 이런 분위기구나’하고 품게 되었던 인상들 중 상당수가 그의 작업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이런 저런 재즈 음반들을 듣다 보면 가끔 그 음색만으로도 이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

녹음과 마스터링은 음악의 질감을 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컬러 그레이딩도 완벽하게 똑같다고 느낀다. 만약 내가 연출 감독이 아니라 전문 컬러리스트로 활동한다면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는 Rudy Van Gelder같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사람의 음악을 듣고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나의 결과물을 보고 카스카를 떠올릴 수 있는 것.

멋대로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내 영역이 아닌 것 같았던 곳으로 다녀올 용기가 났다.

연출을 하지도, 촬영을 하지도 않았지만,
위 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괴인A Wild Roomer》
feature film | 136min | DCP | color | 1.85:1
감독 이정홍

《All, or nothing at all》
feature film | 124min | DCP | color | 1.33:1
감독 Jiajun ‘Oscar’ Zhang